[이강렬 칼럼/8.8] “버는 재미보다 쓰는 재미가 좋다” > 공지사항

본문 바로가기
회원가입    로그인    회원사 가입      

공지사항

공지사항

[이강렬 칼럼/8.8] “버는 재미보다 쓰는 재미가 좋다”

페이지 정보

댓글 0건 조회 3,279회 작성일 2011-08-09 09:40

본문


110808_19_1.jpg\"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취임 후 모 방송 대담 프로에 나와 “대기업 하면 생각나는 게 무엇이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착취”라고 답했다. 집권당 대표로서 그의 발언은 매우 부적절한 것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지만 재벌 대기업에 대한 국민의 일반 정서는 이렇게 부정적인 게 사실이다.



한국 부자들은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문어발식으로 무엇이든지 손을 댔다. 기업용 소모품 및 산업용 자재까지 싹쓸이하는 MRO가 대표적 사례다. 이 골짝 저 골짝으로부터 거침없이 물을 받아들이면서도 아래로는 한 방울도 내보내지 않는 오만한 저수지 같다.



미국 현직 뉴욕시장으로 억만장자인 마이클 블룸버그는 백인과 유색인종 간에 벌어지고 있는 양극화 해결을 위해 최근 사재 3000만 달러, 약 320억원을 쾌척했다. 소로스펀드 매니지먼트 회장인 조지 소로스도 블룸버그 시장의 설득을 받고 같은 금액을 내놓았다. 뉴욕 시는 이 두 부자가 기부한 6000만 달러에 시 예산 6750만 달러를 합쳐 향후 3년 동안 유색인종의 일자리 창출과 교육격차 해소에 초점을 맞춘 ‘청년 이니셔티브’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국 부자는 오만한 저수지



두 거부가 거액을 내놓게 된 배경은 블룸버그 시장이 소로스 회장을 점심에 초대해 “내가 3000만 달러를 내놓을 계획인데 소로스 회장도 내놓을 수 있느냐?”고 묻자 소로스 회장은 그 자리에서 즉각 “좋다”고 답했다고 AP는 전하고 있다. 한마디로 멋진 부자들이다. 검소한 삶을 사는 준 재벌급 부자가 필자에게 물었다. “쓰는 재미가 좋을 것 같소, 버는 재미가 좋을 것 같소?” 자수성가한 그는 처음 부를 축적할 때 재미있었지만 노후에 쓰는 재미가 훨씬 좋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대 학자인 율곡 이이 선생은 그의 대표작 성학집요(聖學輯要)에서 경장(更張)을 말했다. 요약하면 경장이란 융성이 극진하면 그 속에서 쇠미함이 일어나므로 혼미함과 게으름에서 깨어나 낡은 관심을 씻어내고 묵은 폐단을 개혁해야 나라가 빛나고 새롭게 된다는 뜻이다.



창업과 수성 그리고 경장은 나라뿐 아니라 기업의 흥망성쇠 과정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삼성의 경우 이병철 회장이 창업을 했고 이건희 회장이 수성을 했으며 3세 이재용 사장에 이르러 경장을 맞았다. 현대 자동차도 정주영 회장과 정몽구 회장을 거쳐 정의선 부회장에 이르렀다. SK, LG 그룹도 마찬가지로 경장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창업과 수성은 창업주와 2세 후계자의 근면함과 노력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3세 경장 단계에 이르면 본인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고 한다. 즉 친가, 외가를 비롯해 모든 주변 사람들의 도움, 특히 그들이 쌓은 적덕(積德)과 적선(積善)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적덕지가 필유여경(積德之家 必有餘慶)이라 했다. 덕을 쌓은 집에 반드시 경사가 있다는 말이다.



창업·수성보다 更張이 어렵다



몇몇 재벌들이 재산 일부를 사회에 내놓았지만 자발적인 환원은 거의 없다. 삼성, 현대자동차 사주가 수천억원 재산 출연을 약속하고 지금 이행 중이지만 자발적이라기보다 재판이나 수사에 관련돼 마지못해 내놓은 여론무마용이라는 지적이다. 많은 재산을 내놓았음에도 여론은 그리 곱지 않다. 최근 MRO와 관련해서도 삼성이 매각, SK는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 포스코는 이익을 남기지 않겠다고 했으나 이들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이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존경을 받는 미국 부자들과 멸시 받는 한국 부자들의 차이는 딱 두 가지다. 정직하게 벌었는가? 멋있게 썼는가의 차이다. 이제 경장에 이른 한국의 재벌 3세들이 앞서 할아버지, 아버지와 달리 진정 존경을 받으려면 그들에게 돈을 벌게 해준 사회를 위해 멋있게 써야 한다. 경장에 이른 재벌 3세들도 블룸버그, 소로스, 빌 게이츠처럼 쓰는 재미가 더 좋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이강렬 논설위원 ryol@kmib.co.kr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24 한국프레스센터 1311호   전화: 02-723-7443   팩스: 02-739-1985
Copyright ©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All rights reserved.
회원사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