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형 칼럼/9.20] 발자크의 망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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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334회 작성일 2012-09-20 09:11본문
프랑스는 물론 유럽의 제1부자인 베르나르 아르노가 정부의 부자세(75%)에 반대하여 이달 초 벨기에 국적 취득을 신청했다는 뉴스는 별로 크게 취급되지 않았다. 한국 같으면 제1그룹 총수가 일본 국적을 신청했으면 생난리가 날 것 같은데 프랑스는 선진국이어서 그냥 조용하게 넘어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발칵 뒤집혀 있다. 진보 신문 리베라시옹은 \"천박하고 공격적인 인물\"로 아르노를 묘사하자 그는 수개월치 광고물량을 취소해 버렸고 이 신문은 아르노가 웃고 있는 사진을 대문짝만 하게 싣고 \"뒈져버려 졸부야(Sod off, you rich bastard)\"라고 욕을 퍼부었다.
올해 63세인 아르노는 루이 14세 때의 사치풍조를 상품화시켜 당대에 410억달러(약 45조원)를 벌어들여 유럽 최고, 세계 4대 부호가 된 인물이다. 그가 소유한 기업인 LVMH의 연간 매출액은 한국 돈으로 35조원 정도로 포스코, 기아차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는 1985년부터 크리스찬디올을 필두로 루이비통, 모에샹동, 헤네시, 셀린 같은 유명 브랜드 60여 개를 사들여 부를 키웠다. 브랜드를 인수할 때 걸핏하면 재판을 걸어 상대를 쓰러뜨리는 샤일록 같은 소송의 명수로 `양복을 입은 늑대`가 그의 별명이다. 시크(chic)한 사치품을 세계에 판다면 흥겹고 폼나는 신사여야 하거늘 어찌 얼음장처럼 찬 심장을 가졌단 말인가.
이런 용의주도한 인간이 그냥 재미로 벨기에 국적 신청을 했을 리 만무하고 두 번 결혼에 5명의 자녀를 둔 그가 상속세 덕을 보고자 일을 꾸몄으리라는 관측이다.
경제난을 배경으로 당선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부자와 재능 있는 자에게 포퓰리즘 정책을 펴자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레드카펫을 깔아놓고 프랑스 부자를 기다린다\"고 했고 벨기에는 \"웰컴 미스터 아르노!\"라며 약을 올렸다.
이 사건은 대단히 상징적이며 한국의 경제민주화나 재벌정책과도 심정적으로 닿아 있는 측면이 있다. 일찍이 `인간희극` 같은 작품으로 유명한 프랑스 대문호 오노레 드 발자크는 \"커다란 재산축적 너머엔 범죄가 있다\"는 논리를 19세기 그의 소설 속에 펼쳤다. 프랑스 사람들의 가슴속에, 그리고 전 세계 못 가진 자들의 머리에 혼란한 씨앗을 뿌려 놓았다. `월가점령` 1주년을 맞아 1% 대 99%의 대결을 부추기는 자들의 마음속에도.
한국이 대통령 선거 3개월을 앞두고 재벌 때리기를 하는 정치, 사회심리 기저에 도대체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세계 1, 2위 부호의 얼굴과 마음 씀씀이는 프랑스 짠돌이와는 전혀 딴판이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은 아르노 전 재산보다 많이 기부했다. 카네기와 록펠러 그리고 안철수는 발자크가 인간의 마음속에 심어놓은 증오를 역이용한 셈이다.
아르노의 소동은 우리에게 몇 가지 교훈을 준다. 하나는 발자크의 공리는 그 당시 미시시피 거품을 악용한 존 로(John Law) 같은 악행만을 본 것이다. 구글 페이스북 창업자들은 인간의 창의성에 바탕을 둔 기술력으로 초거부가 됐을 뿐 하등 범죄와 무관하다. 현대는 발자크의 망령에서 졸업했다.
둘째, 프랑스처럼 포퓰리즘을 악용해 징벌적 정책을 쓰면 일류국가도 못쓰게 된다. \"젊은이들이여 프랑스를 떠나라\"고 하는 나라가 무슨 좋을 일이 있겠는가. 제조업 세계 최강은 독일이다. 김종갑 지멘스코리아 회장은 \"한국이 움직이면 독일이 긴장한다\"며 \"두려움의 실체는 속도(speed)\"라고 말한다. 기 소르망의 평가가 아니라도 속도를 만들어내는 건 오너체제의 장점이다. 김승연 한화 회장이 실형을 선고받았을 때 \"법 위에 인간차별이 없어진 시대\"라는 평가가 주류였다. 한국 사회에서 총수에 대한 공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깨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숨어 있다. 한국은 발자크의 망령을 쫓아낼 한국자본주의 2기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카네기 이후 100년 만에 빌 게이츠가 그 길을 가고 있다.
[김세형 주필]
아니다. 발칵 뒤집혀 있다. 진보 신문 리베라시옹은 \"천박하고 공격적인 인물\"로 아르노를 묘사하자 그는 수개월치 광고물량을 취소해 버렸고 이 신문은 아르노가 웃고 있는 사진을 대문짝만 하게 싣고 \"뒈져버려 졸부야(Sod off, you rich bastard)\"라고 욕을 퍼부었다.
올해 63세인 아르노는 루이 14세 때의 사치풍조를 상품화시켜 당대에 410억달러(약 45조원)를 벌어들여 유럽 최고, 세계 4대 부호가 된 인물이다. 그가 소유한 기업인 LVMH의 연간 매출액은 한국 돈으로 35조원 정도로 포스코, 기아차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는 1985년부터 크리스찬디올을 필두로 루이비통, 모에샹동, 헤네시, 셀린 같은 유명 브랜드 60여 개를 사들여 부를 키웠다. 브랜드를 인수할 때 걸핏하면 재판을 걸어 상대를 쓰러뜨리는 샤일록 같은 소송의 명수로 `양복을 입은 늑대`가 그의 별명이다. 시크(chic)한 사치품을 세계에 판다면 흥겹고 폼나는 신사여야 하거늘 어찌 얼음장처럼 찬 심장을 가졌단 말인가.
이런 용의주도한 인간이 그냥 재미로 벨기에 국적 신청을 했을 리 만무하고 두 번 결혼에 5명의 자녀를 둔 그가 상속세 덕을 보고자 일을 꾸몄으리라는 관측이다.
경제난을 배경으로 당선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부자와 재능 있는 자에게 포퓰리즘 정책을 펴자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레드카펫을 깔아놓고 프랑스 부자를 기다린다\"고 했고 벨기에는 \"웰컴 미스터 아르노!\"라며 약을 올렸다.
이 사건은 대단히 상징적이며 한국의 경제민주화나 재벌정책과도 심정적으로 닿아 있는 측면이 있다. 일찍이 `인간희극` 같은 작품으로 유명한 프랑스 대문호 오노레 드 발자크는 \"커다란 재산축적 너머엔 범죄가 있다\"는 논리를 19세기 그의 소설 속에 펼쳤다. 프랑스 사람들의 가슴속에, 그리고 전 세계 못 가진 자들의 머리에 혼란한 씨앗을 뿌려 놓았다. `월가점령` 1주년을 맞아 1% 대 99%의 대결을 부추기는 자들의 마음속에도.
한국이 대통령 선거 3개월을 앞두고 재벌 때리기를 하는 정치, 사회심리 기저에 도대체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세계 1, 2위 부호의 얼굴과 마음 씀씀이는 프랑스 짠돌이와는 전혀 딴판이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은 아르노 전 재산보다 많이 기부했다. 카네기와 록펠러 그리고 안철수는 발자크가 인간의 마음속에 심어놓은 증오를 역이용한 셈이다.
아르노의 소동은 우리에게 몇 가지 교훈을 준다. 하나는 발자크의 공리는 그 당시 미시시피 거품을 악용한 존 로(John Law) 같은 악행만을 본 것이다. 구글 페이스북 창업자들은 인간의 창의성에 바탕을 둔 기술력으로 초거부가 됐을 뿐 하등 범죄와 무관하다. 현대는 발자크의 망령에서 졸업했다.
둘째, 프랑스처럼 포퓰리즘을 악용해 징벌적 정책을 쓰면 일류국가도 못쓰게 된다. \"젊은이들이여 프랑스를 떠나라\"고 하는 나라가 무슨 좋을 일이 있겠는가. 제조업 세계 최강은 독일이다. 김종갑 지멘스코리아 회장은 \"한국이 움직이면 독일이 긴장한다\"며 \"두려움의 실체는 속도(speed)\"라고 말한다. 기 소르망의 평가가 아니라도 속도를 만들어내는 건 오너체제의 장점이다. 김승연 한화 회장이 실형을 선고받았을 때 \"법 위에 인간차별이 없어진 시대\"라는 평가가 주류였다. 한국 사회에서 총수에 대한 공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깨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숨어 있다. 한국은 발자크의 망령을 쫓아낼 한국자본주의 2기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카네기 이후 100년 만에 빌 게이츠가 그 길을 가고 있다.
[김세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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