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민일보 오세현 기자 외 1인의 [폐광 그 후 - 다시 찾은 미래] 세계 최대 독일 광산박물관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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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광 그 후 - 다시 찾은 미래] 22. 세계 최대 독일 광산박물관의 교훈
‘옛 탄광 그대로’ 폐광역사로 보는 지속 가능한 미래
1930년 설립 1948년 대중 개방
독일 기술·기계 전세계 홍보 목표
4개 테마 전시품 3000여점 보유
지하 20m 체험장 옛 막장 재현
폐광 대비 지역사회 유지 고민
박물관 내 광물질 연구진 보유
전직 광부 교육 프로그램 운영
기술자 양성·일자리 소개 역할
정부·학계 지원 도내 시사점 커
역사 보존 폐광 후 방향성 제시
“지하의 보이지 않는 곳, 광산의 역사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폐광 이후에도 광산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광산 그 자체를 역사적 유물로 보존하는 곳이 있다. 독일 노스트라인 웨스트팔렌주 보훔시에 위치한 세계 최대 규모의 광산박물관인 독일 광산박물관이다. 보훔시는 과거 탄광과 철강 산업에 힘입어 독일의 주요 공업도시로 꼽혔던 대표적인 탄광촌이다. 이들은 과거의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광산박물관이 지하의 보이지 않는 곳, 광산의 역사를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 독일 보훔시에 위치한 ‘독일 광산박물관’ 전경
■독일 광산박물관의 역사
세계에서 가장 큰 광산박물관인 ‘독일 광산 박물관’은 1930년 4월 1일 설립됐다. 약 110년 전 독일 게오르그 아그리콜라 공업대학교(Technische Hochschule Georg Agricola)의 교수들이 제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독일이 가진 기술과 기계들을 전세계에 선보이자는 의견을 냈고, 이를 위해 기획한 전시회가 출발점이 됐다.
이후 보훔시와 루르공업의 협동조합인 WBK의 후원 아래, 초대 관장인 하인리히 빙켈만이 도축장 부지였던 곳을 박물관으로 개발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후 1948년 박물관을 대중에게 개방하게 됐다.
현재 광산에서 사용하던 유물을 포함해 3000개가 넘는 전시품을 선보이고 있으며, 2019년 7월부터 석탄, 채굴, 광물, 예술 4개의 테마로 구성된 상설전시 투어를 만나볼 수 있다. 오디오 가이드와 전직 광부들의 가이드 투어가 준비돼 있다.
▲ 광부들이 사용한 의복과 신발
■독일 탄광 체험장
박물관 지하 20m 아래에는 길이 2.5㎞에 이르는 탄광 체험장이 조성돼 있다. 옛 독일 탄광을 그대로 재현한 이곳에서는 실제 막장에서 사용하던 기계와 전차, 전깃줄까지 만나볼 수 있다. 광산의 탄층을 보여주는 암벽과 지하수, 광부들이 사용하던 화장실과 엘리베이터도 있는데, 크기만 조금 다를 뿐 독일의 막장을 그대로 옮겨온 것처럼 조성돼있어 생생한 체험이 가능하다.
철제 아이빔으로 된 동발 아래 각각의 구역에는 석탄을 캐는데 사용하는 채탄기를 비롯해 광산의 각종 기계들이 자리하고 있다. 해당 기계들은 광산에서 실제 사용하던 것들로 현재까지도 작동이 가능하다.
이날 가이드를 담당한 제바스티안 펩니(Sebastian Pewny)씨가 기계가 실제 작동하는 것을 보여주었는데, 기계에서 나오는 소리와 진동이 해당 구역 전체가 울릴 정도로 어마어마해서 순간적으로 양쪽 귀를 틀어 막았다.
많은 광부들이 퇴직 후 소음성 난청을 호소하는 이유를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땅을 파는 기계를 직접 작동해보기도 했는데 해당 기계는 공기만 나올 수 있게 되어있는데도 온몸으로 전해져오는 진동 때문에 몸을 제대로 가누기 어려웠다.
이외에도 화약을 넣고 굴을 폭파하는 장치, 암석을 뚫는 기계, 탄을 캐는 채탄기, 석탄을 실어나르는 광차 등이 갱도 곳곳에 놓여있었다. 채탄기로 탄을 캐면 광부들이 이를 광차에 실어나르는 등 작업을 하는 공간도 마련돼 있는데, 1960~1970년대 독일로 파견된 파독광부들도 독일인들과 이곳에서 작업을 했다고 한다.
▲ 독일 광산에서 광부들이 실제로 사용했던 기계들
이날 함께 동행한 파독광부 출신 김용길 재독한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은 “내가 일했던 곳도 꼭 저렇게 생겼는데, 정말 똑같이 만들어놨다”며 “기계가 탄층을 깎으면 광부들이 거기 와서 받아가곤 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광부들은 열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 광차가 더 빨라서 종종 탄 위에 앉아서 함께 타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며 “기계로 10m를 뚫으면 하루에 몇 십, 몇 백 t의 탄이 나왔었다”고 했다.
과거 초당 12m 아래로 내려갔던 광부들의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도 경험해볼 수 있다. 엘리베이터 양쪽 내부에서 층마다 당시 일하던 광부들이 농담을 하며 말을 건네는 영상이 나오는데, 생생함과 재미를 더한다.
또 이곳 한편에는 결혼식장이 마련돼 있는데, 광부로 일했던 사람들이 옛날을 생각하며 웨딩마치를 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 독일 광산박물관의 탄광 체험장. 경사 탄층으로 된 한국의 갱도와 달리 독일 광산의 탄층은 시루떡처럼 탄층이 일정하다. 채탄기가 탄을 캐면 광부들이 탄을 받았다.
■광산박물관의 가치와 역할
독일 광산박물관이 추구하는 가치는 과거의 역사를 통해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게오르그 아그리콜라 공업대학교의 준힐트 클라인가르트너(Sunhild Kleingartner) 교수는 “기계 자체만 놓고보면 문제가 없지만 이로 인해 공해문제나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지 않느냐”며 “우리의 연구는 과거의 역사를 연구하고 보여줌으로써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 그 다음을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 석탄은 없어졌지만 다른 광물질을 찾아내 이를 유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새로운 일자리를 발굴해내는 것도 연구가 지향하는 가치”라고 했다.
현재 광산박물관에는 광산에서 나오는 광물질과 지하수, 가스 등을 연구·관리하는 연구진들이 있고, 석탄을 수입하면서 이와 관계된 다양한 일자리를 양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전직 광부들을 교육하는 프로그램도 시작했는데, 광산이 문을 닫으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이 점점 사라지면서 광산박물관이 그 역할을 맡게됐다. 전직 광부들이 가진 기술이 다른 분야에 적용돼 이들이 계속해서 일을 해나갈 수 있도록 교육을 진행, 기술자를 양성하고 새로운 기관 등에 연계하는 일을 하고 있다.
▲ 기계가 실제로 작동되는지 본지 기자가 직접 체험해봤다.
준힐트 클라인가르트너 교수는 “우리는 1950년대부터 광산이 문을 닫을 것을 예상했다. 광업은 미래 산업은 아니기 때문”이라며 “1960~1970년대는 전쟁 이후 일자리와 공업 발전을 위해 탄을 캤지만, 이 산업이 언젠가 문을 닫을 것은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광산이 문을 닫게 되면 이곳에서 일하던 이들을 어떻게 할지, 이 지역이 어떤 식으로 발전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 연구해왔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광산이 문을 닫을 것을 오래 전부터 예상하고 이로 인해 지역사회가 붕괴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유지, 발전할 수 있도록 학계가 주 정부의 지원 아래 연구에 힘써왔다는 점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의 가장 큰 광산인 장성광업소가 얼마전 문을 닫아 젊은 광부들이 일자리를 잃고 지역사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독일 광산박물관이 해온 그동안의 연구와 노하우 등을 통해 도움을 줄 수 있길 바란다는 기자의 말에 준힐트 교수는 흔쾌히 “가능하다”고 답했다. 독일 보훔/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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