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민일보 오세현 기자 외 1인의 [폐광 그 후 - 다시 찾은 미래] 독일 보트로프 경석 인공산 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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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광 그 후 - 다시 찾은 미래] 21. 깊은 그리움 재독강원도민회
“늘 그리운 강원도…폐광 겪고 있는 고향에 희망 되고파”
1963~1977년 광부 7936명
독일 루르 탄광지대 파견 근무
정착민 ‘재독 강원도민회’ 결성
태풍 피해모금·장학금 전달 등
고향사랑 사업·교류 지속 추진
독일 최대 탄광 폐광 전후 목격
장비·경험 등 물심양면 지원 의지
“도울 수 있는 모든 것 돕고 싶어”
1963년부터 1977년까지 우리나라는 총 7936명의 광부를 독일 루르 탄광지대로 파견했다. 파독광부들은 말도 안 통하는 낯선 땅, 지하 1400m 아래 깊은 갱도로 내려가 탄을 캤고, 이들이 벌어온 외화는 한국경제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당시 3년의 계약이 끝난 후 곧바로 한국으로 귀국한 이들이 있는가하면, 독일에 정착한 근로자들도 있었는데 이들을 중심으로 독일 교포사회가 형성됐다. 독일 카스트로프라욱셀(Castrop-Rauxel)에서 열린 8·15 광복절 행사에서 강원도 출신의 파독광부들을 만났다. 이들은 “독일에 살고 있지만 늘 고향이 그립고, 고향 땅 강원도가 잘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원도 출신의 파독광부
김명규(81)씨는 1971년 독일로 파견돼 1994년 독일 뮌스터랜드 지역의 알렌광산이 폐광할 때까지 광부 생활을 했다. 3년의 계약이 끝나고 독일에 정착했지만, 어릴 적 태백에서 학교를 다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김 씨는 “당시 태백 장성에서 철암까지 다니는 석탄 광차가 있었는데, 그 차를 타고 산을 넘어 학교에 가곤 했다”며 “산을 넘어갈 때 밭에 심어놓은 무를 따다 먹은 기억이 난다”고 했다. 이어 “당시 내가 다니던 태백중학교는 학도병으로 참전한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도 6·25 학도병 위령제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김시균(76)씨도 1977년 독일로 파견돼 11년간 광산 생활을 했다. 삼척 출신의 김 씨는 “우리가 고향을 떠나올 때만 해도 판자촌 비슷한 곳에서 생활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하다”며 “독일에 오려면 광산경력이 1년 정도 있어야 해서 여기 오기 전 삼척 도계광업소에서 5년간 일했다. 그때는 갱도 안에 나무 동발이 서있었고 사람이 기어들어갈 정도로 공간이 좁았다”고 했다.
정연비(73)씨는 1971년 제대 후 함태광업소에서 2년 6개월 간 일하다가 1974년 독일로 파견돼 29년간 채탄, 우편 배달 일을 했다. 정 씨는 “1960년대 당시 제대한 사람들은 전부 태백으로 다 몰려와서 대한민국이 울렁거릴 정도로 태백은 돈도 많고 사람도 많은 곳이었다”며 “그런데 2013년도에 다시 찾아가보니 옛날과 많이 달랐다. 장성광업소 인원도 줄고, 광산 아파트도 없어지고, 시장에 가봤더니 사람도 너무 없더라”고 했다.
동해 출신의 송기범(83)씨는 1977년 독일에 파견돼 3개월 정도 막장에서 일하다가 독일의 직업교육 프로그램인 아우스빌둥에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기계 관련 교육 일을 했다. 송 씨는 “초등학교 운동회 때 달리기를 했는데, 부모님들이 와서 자식들이 달리는 걸 보고 감격하고 박수치고 눈물도 닦고 했던 게 생각이 난다”며 “그게 참 좋았다”고 했다.
이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독일에 남는 것을 선택했지만, 여전히 고향 땅 강원도가 그립고, 잘 되길 바란다고 했다. 김명규씨는 “아무리 우리가 여기와서 산다고 해도 고향이 그립지 않겠냐”며 “고향땅이 폐광 이후에도 여전히 잘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시균씨도 “옛날에 도계광업소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생각나서 이후에 거기를 한번 찾아갔는데 만나지 못하고 그냥 돌아와서 아쉬웠다”며 “도계 광업소가 폐광하기 전에 내가 일하던 곳을 한번 찾아가보고 싶고, 같은 광부로서 폐광을 맞은 광부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해주고 싶다”고 했다.
▲ 재독 강원도민회가 2005년 4월 해외도민 초청사업의 일환으로 강원도청을 방문했을 당시 모습. 김시균씨 제공
■재독 강원도민회와 강원도
“고향이 잘 되길 바란다”는 이들의 바람은 그간 활동으로 이어져왔다. 강원도 출신의 파독광부, 간호사로 구성된 ‘재독 강원도민회’는 2003년 7월 창립됐다. 당시 초대 부회장이었던 김시균씨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시작된 작은 모임은 재독 강원도민회가 정기적으로 모이는 곳이 됐고, 이후 이들은 고향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지 고민하던 중 강릉 지역이 수해로 큰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게돼 십시일반 지원금을 모아 2000유로 상당의 모금액을 전달했다.
이때 강릉은 2002년 태풍 루사, 2003년 태풍 매미, 2004년 태풍 메기로 인해 전국에서도 지원이 이뤄질 만큼 수해가 심각했다. 이날을 기점으로 도민회는 매년 강원도에서 선발한 취약계층 청소년 2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김시균씨는 “강원도에서 산불이나 재해가 일어나면 도민회에서 지원금을 보냈는데, 코로나19 발생 전까지 활동이 이어져왔다”며 “나도 대표로 간 적이 있고, 우리 독일 사위가 전달하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 재독 강원도민회가 2012년 도내 고등학생들에게 장학금 1000유로를 전달한 모습
강원도에서 진행한 ‘청소년 국제화 마인드 함양 유럽연수’ 프로그램을 신청한 청소년들을 위해 이들이 유럽에 머무는 동안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며 유럽 곳곳을 안내하기도 했다. 김명규씨는 “학생들이 20~30명씩 단체로 올 때도 있었고, 개인으로 올 때도 있었다”며 “당시 우리집에 머물면서 생활했던 학생들이 나중에 대학에 합격했다며 연락이 오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외에도 강원 FC 주식을 사기도 하고, 평창이 동계올림픽 유치에 도전할 때 함께 응원하며 힘을 모으기도 했다”고 했다.
2005년 강원도는 화답의 의미로 재독 강원도민회를 초청, 해외도민 초청사업의 일환으로 도청에서 도정에 대한 설명과 함께 도내 주요관광지와 산업시설을 돌아보는 일정을 진행했다. 김시균씨는 “강원도에 방문했을 때를 기억하려고 블로그에 사진을 올려놓기도 했다”며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강원도와 교류도 계속 했었고, 우리도 고향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참 좋았는데, 지금은 그런 게 끊겨서 아쉽다”고 했다.
▲2011년 도내 청소년 32명이 국제화 마인드 함양연수를 위해 독일을 방문한 모습.
■폐광지 파독광부와 강원광부
1980~90년대 독일 최대 탄광 지역인 루르 지역은 광산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으면서 지역 경제가 요동쳤다. 파독 광부들은 지역에 살면서, 광산이 문을 닫을 때까지 함께하면서 격동의 시기를 보냈고, 폐광 전후를 눈으로 직접 보고 경험했다. 이에 광부들은 폐광을 겪고 있는 고향을 위해 도울 수 있는 건 뭐든 돕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김시균씨는 “강원도는 내가 태어나 여기 와서 살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곳이자 신혼 전까지 생활했던 곳이다. 정부에서 하는 일이라 문을 닫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내가 다녔던 곳이니 아쉬움도 있고 걱정도 된다”며 “같은 광부생활을 해본 선배로서 같이 고생을 해본 입장에서 고향에 남아있는 광부 후배들을 만나 위로도 건네고 싶고, 희망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또 광산박물관을 만들 때 이곳의 장비 지원이 필요하다고 하면 지원해줄 수 있다”며 “나는 한국과 독일의 광산에 모두 들어가봤으니 비교도 할 수 있고, 필요한 것이 무엇이든 내가 살아 숨쉴 때까지 도울 수 있는 걸 돕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다.
▲ 독일 보훔박물관이 옛 탄광의 모습을 재현해놓은 모습. 최현정
▲ 독일 보훔박물관이 옛 탄광의 모습을 재현해놓은 모습. 최현정
김명규씨도 “독일도 폐광을 겪었으니, 폐광지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꼈기 때문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있을 것”이라며 “고향이 발전하는데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연비씨는 “어머니가 나를 독일에 보내놓고 밥을 먹다가 비행기만 뜨면 연비온다고 하시다가 돌아가셨다. 독일에 온 지 50년이 됐고, 한국에 돌아간다 하면서도 못갔다”며 “이젠 강원도에 가고 싶어도 연고가 없어서 반겨주는 이가 없어 가기 어렵고, 광산에서 허리를 크게 다친 탓에 몸이 아파 비행기를 타는 것도 어렵게 됐다. 그래도 고향이 잘 되길 바라는 건 모두가 같은 마음이고, 언제나 그립다”고 말했다.
독일 카스트로프라욱셀/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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