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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오형규 한국경제 논설실장] 大전환 시대의 '이건희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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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63회 작성일 2020-10-29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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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4차 산업혁명 격변기
韓 기업史 '거인의 시대' 종언

李회장 '선지자'적 통찰 현실화
국민은 '기업 존재' 성찰하는데
'기득권 4류 정치'만 변함없어

오형규 논설실장
[오형규 칼럼] 大전환 시대의 '이건희 신드롬'

어깨에 짊어져야 할 짐의 무게 탓일까. 엊그제 이건희 삼성 회장 빈소에서 마주한 이재용 부회장의 눈빛에는 만감이 담긴 듯했다. ‘아버지의 부재(不在)’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겪어본 이들은 잘 안다.

이 부회장은 부친보다 키가 20㎝나 크다. 그러나 세상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존재를 키로 느끼지 않는다. 삶의 궤적, 존재 자체가 아버지의 진정한 키다. 이 부회장에게 부친의 존재는 얼마나 컸을까. 1993년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라”던 신경영 선언 당시 이 회장은 53세였다. 어느덧 이 부회장이 52세다.

어제 이 회장 영결식으로 격동의 한국 기업사(史)에서 ‘거인의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동시에 뭔가 크나큰 변화가 휘몰아치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코로나 위기만이 아니다. 초(超)고령화와 저성장 속에 ‘ABC(AI·빅데이터·클라우드)’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쓰나미는 더 빨라질 기세다. 어떤 미래가 기다릴지 가늠조차 어렵다. 코앞의 미국 대선, 미·중 테크 냉전, 노딜 브렉시트 등 불확실한 이슈도 끝이 없다. 10년 뒤쯤이면 내연기관차가 퇴출되는데 우리는 아직도 ‘어제의 문제’에 갇혀 있지 않은가.


방향감을 잃은 지금 상황을 이 회장이라면 어떻게 봤을까. CNN이 ‘선지자(先知者)’로 지칭한 그는 초일류 기업을 일구기까지 고뇌와 고민, 반성과 성찰의 나날을 보냈다. 그의 선견이 곧 지금의 현실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묻지 못했기에 그의 부재가 더 아쉽다.

마침 서재 한구석에서 이 회장이 쓴 유일한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1997)를 발견했다. 정가 6500원짜리 절판도서가 10만원을 호가한다니 횡재한 기분이 잠시 들었다. 하지만 진짜 횡재는 다시 읽게 된 것이다. 그가 뉴밀레니엄을 앞두고 쉬운 언어로 풀어놓은 메시지를 몇 가지만 인용해보자.

“아는 데에는 지식과 상식, 지혜가 있다. 지식과 상식은 배워서 얻을 수 있지만 지혜는 깨달음을 통해서만 얻는다.” “프로골퍼도 슬럼프에 빠지면 채 잡는 것부터 새로 배운다. 문제가 생기면 항상 원점으로 돌아가 해결해야 한다.” “5%의 사람은 리더의 말만 들어도 믿는다. 그러나 95%는 실제 행동을 봐야 믿는다.” “정보는 공유할 때 비로소 가치가 있다.”


또 “패배의식은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잠재운다. 경제적 공황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지만 심리적 공황은 한번 빠지면 쉽게 벗어날 수 없다”며 ‘럭비정신’을 강조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럭비정신은 불굴의 투지, 하나로 뭉치는 단결력, 태클을 뚫는 강인한 정신력을 의미한다. 이 밖에 23년 전 이미 ‘차별 없는 사회’ ‘녹색 경영’을 강조했고, 21세기는 ‘교육전쟁’과 ‘디자인’ 등 소프트 경쟁력에서 승부가 난다고 봤으며, 정부와 기업 국민 모두 ‘국제화’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후배 기업인뿐 아니라 모든 위정자에게 던지는 말 같다. 2009년 김수환 추기경 서거 이후 ‘내 탓이오’의 국민적 성찰이 있었듯이, 이 회장의 타계는 국민이 ‘기업의 존재가치’를 깊이 새기는 계기가 됐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 말처럼 ‘1등 정신’을 심어준 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다.

이 회장은 1995년 장쩌민 중국 주석을 만났을 때 덩샤오핑을 국가의 ‘총설계자’로 지칭한 데 큰 감명을 받았다고 술회했다. 그 직후 나온 게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는 ‘베이징 발언’이다. 기업도 변하고, 국민도 변했는데 그 ‘4류 정치’만 도무지 변함이 없다. 아무리 국회를 물갈이해도, 정권이 바뀌어도 똑같다.

지금 ‘대전환의 시대’에 ‘20년 집권론’이 무성하지만 10, 20년 뒤 비전을 말하는 정치인이 하나라도 있는가. “기득권 여당은 재집권 정치만 한다.”(김종철 정의당 대표) 야당은 지리멸렬하며 추스르기도 버겁다. 장관과 청와대 참모들이 온갖 구설에 오르고, 지식인들은 어용 아니면 침묵이다. 리더들이 이토록 ‘업(業)의 본질’을 망각한 적이 있었던가.


정치가 ‘허업(虛業)’을 쌓을수록 ‘실업(實業)’의 기업가 정신을 더욱 희구하게 된다. 거인이 사라진 시대에 남은 이들의 어깨가 무겁다. 국가 운명이 뒤바뀔 대전환기에 무엇을 성찰해야 할지 일깨워준 것만도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이건희 회장이 편히 잠드시길 빈다.


원문보기 https://www.hankyung.com/opinion/article/20201028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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