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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호] 두 글자의 기억과 소망 ( 박종률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이사/CBS 논설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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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9회 작성일 2017-12-28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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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호


두 글자의 기억과 소망


박종률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이사/CBS 논설실장


편협 사무국으로부터 전갈(傳喝)을 받았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얘깃거리를 부탁해 왔다. 글이 서툰 나로서는 무거운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차일피일 미루다 여느때처럼 막바지에 몰려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종종 걸음으로 귀갓길을 재촉했다. 커피 한 모금에 자세도 고쳐 잡고 노트북을 열었다.


어느새 뉘엿뉘엿 한 해의 저물녘이다. 석양(夕陽)의 역광(逆光)을 마주한 2017년의 그림자. 말 그대로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다이내믹 코리아’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드러누운 그림자의‘시작 발’에서부터 ‘끝 머리’까지 전체를 천천히 일으켜세웠다. 올해를 아우른 테두리 안의 기억들은 여전히 생생하고 또렷했다. 두 글자의 이름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은 비선(秘線)이 개입된 농단(壟斷)의 비극이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로부터 진솔한 사과를 들을 수 없었다. 그는 수사와 탄핵 과정에서는 불응과 불복으로, 구속과 재판 단계에서는 반대와 거부로 일관했다. 지난해 엄동설한을 뜨겁게 달궜던 열린 소통 광장의 ‘촛불’은 5월 장미대선에서 문재인 정부의 출범을 견인했다.


촛불의 자발적 참여 정신은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공사 재개를 둘러싼 논란에서도 ‘숙의(熟議)’민주주의의 싹을 돋우는 역할을 수행했다. 세월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 구속되자 마치 시소(seesaw)처럼 바다 위로 올라왔다. ‘인양(引揚)’된 것이 아니라 참다못해 스스로 ‘부양(浮揚)’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영화’<택시운전사>와 <1987>은 켜켜이 쌓인 ‘적폐’더미들의 역겨운 곰팡내에도 코끝 찡한 감동의 소름을 선사했다. 적폐청산과 정치보복의 프레임 대결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와 댓글공작에 나선 국정원의 ‘검은’손가락이 사법적 단죄를 받은 명백한 증거인 것이다. 경주에 이은 역대 두 번째 규모의 포항 ‘강진’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1주일 연기하는 초유의 사태를 불러왔다. 그러나 1%를 위해 99%가 양보한 멋진 시민의식을 선보이면서 수능 연기 결정이 ‘신의 한수’였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1천400조원으로 급증한 가계 부채와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은 서민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며 내수경제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했다. 또 디지털 시대에 오히려 ‘탈 진실(post-truth)’로 변질된 ‘가짜’뉴스의 병폐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언론계의 고민거리가 됐다.


이밖에 압박과 관여만으로는 해법을 찾을 수 없는 ‘북핵(北核)’고차방정식, 그리고 중국과의 ‘사드(THAAD)’갈등은 문재인 정부에게는 외교 역량을 시험하는 난이도 높은 문제로 다가왔다.


이처럼 공교롭게도 올 한 해 기억의 그림을 완성하는 퍼즐 조각들 가운데는 탄핵, 적폐, 블랙, 가짜 등과 같이 부정적 이미지를 지닌 두 글자들이 많았다. 대학 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사악하고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의미의 ‘파사현정(破邪顯正)’을 꼽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파사현정’에는 시한이 정해져있지 않다. 올바름과 진실을 추구하는 일을 멈출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올해의 두 글자를 ‘파사(破邪)’로 상징한다면 다가오는 새해의 두 글자는 ‘현정(顯正)’이길 소망한다. 흡사 ‘암 덩어리’와도 같은 음습한 거짓과 불의, 특권과 반칙, 갑질과 독점을 말끔히 도려내고 그 자리에 ‘정의’와 ‘진실’, ‘소통’과 ‘공감’의 두 글자로 만들어진 새 살을 돋게 해야 한다. 당장 우리 언론인부터 ‘기레기’라는 오명을 더 이상 듣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민의 신뢰를 받는 언론으로 거듭나는 저널리즘 복원의 길은 분노해야 할 때 당연히 분노하고, 비판해야 할 때 제대로 비판하는 데 있다. 청산돼야 할 언론의 적폐는 불의에 침묵하고 비리와 타협하며 권력에 순종하는 행태다. 적어도 책임 있는 언론인이라면 생각과 말이 아닌 행동과 실천으로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 이는 분노와 울분의 피눈물을 참아낸 끝에 마침내해직의 녹슨 사슬을 끊어내고야 만 MBC·YTN 복직 언론인들의 다짐이기도 하다.


개띠 해인 새해 무술(戊戌)년에 우리 언론은 권력에 무릎 꿇는 ‘애완견(lap dog)’이 아니라 무섭게 짖는‘감시견(watch dog)’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국민이 바라는 소통 민주주의를 위한 권력과 언론의 길항관계가 아닐까 싶다.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과 혈당을 높이는 글루카곤의 길항작용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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