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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황정미 세계일보 편집인] 나라답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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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36회 작성일 2020-10-05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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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죽음에 책임 물어야 국가다
정의 대신 권력 택한 檢, 나라인가
 


문희상 전 국회의장의 건배사는 ‘청청여여야야언언(靑靑與與野野言言)’이다. 청와대는 청와대답고, 여당은 여당답고, 야당은 야당답고, 언론은 언론다워야 한다는 뜻이다. 문 전 의장은 2018년 제헌절 경축사에서 “나라다운 나라는 국회가 국회다울 때 완성된다”며 뒤에 ‘국국의의(國國議議)’를 덧붙이기도 했다. 공자가 정치에 대한 중국 제나라 왕 경공의 질문에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운 것)라고 답한 글에서 차용했다. 그런 문 전 의장도 임기 말 패스트트랙 3법(선거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검경수사권조정안)을 강행처리하면서 야당으로부터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한 최악의 국회의장이라는 비난을 샀다.

답다는 건 우리가 상식적으로 기대하는 역할에 부합하는 자질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말처럼 쉽지 않으니 공자도 유념해서 지켜야 할 원칙으로 강조했을 터다. 2017년 19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내세운 슬로건이 ‘나라를 나라답게, 든든한 대통령’이었다. 민주당은 ‘나라를 나라답게’라는 제목의 정책공약집을 내놓았다. 추미애 당대표는 발간사에서 “국민과 함께 만들어나갈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 국민이 최고 권력자가 되는 국가를 만들기 위한 혁신적인 지침서가 될 것”이라며 “반드시 약속을 지켜내고 맹세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황정미 편집인



국가의 최우선 책무는 국민 생명을 보호하는 일이다. 지금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죽음은 원초적인 질문을 던진다. 대한민국 국민이 바닷물에 둥둥 떠서 북한군 총격을 받고 불태워질 동안 군은, 통수권자인 대통령은 무엇을 했느냐고. 문재인 대통령이 실종된 이모씨가 북측 통제하에 있다는 서면 보고를 받은 시각이 22일 오후 6시36분이었다. 그로부터 9시40분쯤 이씨가 사살될 때까지 청와대와 군이 조치를 취한 흔적은 없다. “북측이 구조할 줄 알았다”는 군의 답변은 궁색하다. 국민 안전에 대한 관심을 어떤 채널을 통해서든 북측에 전할 수 없었는지, 당시 상황을 오판했다면 책임을 추궁해야 할 사안이다.


대통령은 침묵했다. 그제 처음으로 희생자에 애도의 뜻을 밝혔다. 이씨가 북한군에 의해 사살됐다는 보고를 받은 23일 오전 8시30분 이후 5일 만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그나마 빠른 사과를 한 건 북한 만행에 대한 정부의 규탄과 국민의 분노,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을 의식해서다. 지금까지 그랬듯 책임 소재가 드러날 진상 조사에는 발을 뺄 것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김정은 사과를 ‘각별하게’ 여기며 쓴소리 한 마디 없다. 해경은 수사 결과 이씨를 월북자로 판단한다고 발표했다. 설사 월북 의사가 있었다 해도 비무장 민간인을 총살하고 시신을 훼손한 북한 만행이 가벼워지지는 않는다. 국민 생명을 보호하지도, 그 죽음에 책임을 따지지도 않는 나라는 나라답지 않다.


국민 총살 정국에 검찰이 서둘러 발표한 추미애 법무장관 면죄부 발표는 한 편의 소설 같다. 당직사병과 전화한 적이 없다던 아들이 실제 당직사병의 부대 복귀 연락을 받고 보좌관에 연락해 휴가 처리를 부탁했고,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추 장관이 보좌관에 아들 부대 지원장교 연락처를 주고 관련 보고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청탁에 관여한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추 장관 아들처럼 대신 휴가 연장을 처리해줄 ‘보좌관’도 없고, 부대 장교를 움직일 ‘배경’도 없는 일반 국민은 기가 찰 노릇이다.

“권력 눈치 안 보는, 성역없는 수사기관을 만들겠습니다.” 추 장관이 발간사를 쓴 ‘나라를 나라답게’ 공약집에 적혀 있다. 추 장관의 검찰개혁은 검찰이 권력 눈치를 안 보는 게 아니라, 권력이 검찰 눈치를 안 보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권력 핵심부를 겨냥한 울산시장선거개입 의혹 사건의 결론 또한 예견된다. 여당 의원이 ‘단독범’ 운운하고 추 장관이 ‘이웃집 아저씨’로 부르며 가짜뉴스 제보자처럼 다룬 당직사병은 이번 사건의 전말을 공정하다고 여길까. 정말 걱정스러운 건 당직사병과 같은 젊은이들이 어차피 고발해도, 분노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고 냉소하고 좌절하는 세상이다. 그런 나라는 나라답지 않다.


원문보기 http://www.segye.com/newsView/20200929514686?OutUrl=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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