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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박미현 강원도민일보 논설실장] 강원도관찰부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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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57회 작성일 2021-12-0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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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역 지세와 풍경을 상징하는 진산이 있다. 춘천의 진산은 봉의산이다. 해발 301.5m이나 외곽으로 산이 둘러싸고 내부는 평편한 춘천분지 한가운데에 솟아있어 존재감만큼은 남다른 상징처이다. 산을 등지고 시가지를 조망하는 남쪽 산록은 700여 년 전부터 행정기관이 자리해왔다. 문헌자료가 풍부하며 1700년대부터는 고지도에 그림으로도 남아있다. 전통시대는 관아를 중시했기에 민가는 간략하게 그려도 관청은 건물 배치와 명칭을 세세하게 지도에 적고 있다.

춘천 행정은 1896년 강원도 행정을 다루는 곳으로 승격된다. 제국주의 열강 침략이 잦아지자 외침을 당했을 때 ‘보장(保障)’ 요충지로 춘천을 주목하면서 1888년 유수부로 승격하고 1890년에는 이궁 건물을 추가로 짓는다. 1896년 13도 체제로 지방행정이 개편되면서 춘천에 강원도관찰부가 들어선다. 그해에 춘천초등학교가 개교한 곳도 도관찰부 건물이었다.

강원도관찰부 건물은 이전의 춘천도호부를 물려받아 확장한 셈이다. 업무공간 외에 손님이 머무는 수춘관, 강을 조망하는 누각인 문소각 그리고 요선당, 봉의루 등이 있어서 사적 공간으로도 활용했다. ‘연정’ ‘연당’이라는 네모난 연못이 있어서 연꽃을 심어 감상했으며, 연못 위쪽으로는 ‘묘수’라고 불리는 샘물이 있었다.

1910년 식민지 치하가 되면서 일제는 집요할 정도로 강원도관찰부 전통건물을 지속적으로 헐어냈을 뿐만 아니라 관찰부 터보다 더 높은 곳에 신사를 지어서 한국인에게 고개를 숙이도록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면서 현대식건물로 대체돼 옛건축물 유구조차 확인키 어려울 정도가 됐다. 전통시대와 달리 옹벽을 치고 건물을 지어 ‘관존민비’가 그대로 드러난다.

요즘 봉의산 산록의 도청사가 화제에 오르내린다. 80여년 전인 1939년에도 자리가 비좁아 평지인 옥천동 이전안이 성사단계에서 자재수급문제로 불발됐다. 강원도청사 신축 의제는 춘천 도심에서 그 자리가 크고 길었던 역사문화를 돌아보고 활용 지점을 살펴볼 좋은 기회다.

원문보기 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110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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