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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권혁순 강원일보 논설주간] 탁상머리 정책으로 국민을 실험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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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77회 작성일 2021-10-27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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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의 정책이 곧 좋은 결과 도출하지 않아
임금도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돼야
'일단 시행하고 보자는 정책' 피해자는 국민
 


프랑스혁명 당시 로베스피에르는 우유 값이 비싸다는 사람들의 불만에 저소득층을 위해 우유가격을 못 올리도록 최고가격을 통제했다. 처음에는 우유가격이 낮아서 모든 사람이 우유를 구입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산자들은 시장여건에 비해 낮은 가격의 우유를 공급하지 않았다. 심지어 천정부지로 치솟은 값을 주고도 우유를 사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우유공급자들은 시장에서 제값을 받지 못하게 되자 우유 생산을 줄이고 버터나 치즈 생산으로 전환한 것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정부가 의도한 것처럼 저소득계층의 소득을 높이는 효과보다는 생산성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임금 때문에 노동 수요를 감소시켜 노동자가 노동시장에서 축출되는 역효과를 초래했다. 당장은 최저임금이 오르므로 소득이 늘겠지만 인건비 압박에 부담을 느낀 기업은 고용을 줄였다.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고 일자리만 없어졌다.

정통 경제학에서는 최저임금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많다. 임금도 물가와 마찬가지로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데, 시장 균형보다 높게 설정된 최저임금은 이보다 노동생산성이 낮은 사람들의 고용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한다는 이유에서다. 약자를 구제해 격차를 시정하겠다는 정책이 약자부터 해고해 오히려 격차를 확대한다. 선의로 만들어진 정책이 곧 좋은 결과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맨큐의 경제학’ 저자인 그레고리 맨큐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최저임금 상승이 젊은층과 미숙련 근로자의 실업률 증가로 연결된다는 데 경제학자 79%가 동의한다고 소개했다. 현실과 따로 노는 탁상머리 정책의 함정을 지적한 것이다. 자영업자들에게 최저임금은 생존의 문제다.

그들 생각은 듣지도 묻지도 않은 것, 현장의 직감과 통찰을 얕잡아 본 정책의 집행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영어식 표현으로 가방 끈 길고 책에서 지식을 습득한 사람을 북 스마트(Book smart), 구르는 돌처럼 현실에 부딪혀 가며 인생학교에서 삶의 노하우를 터득한 이들을 스트리트 스마트(Street smart)라고 한다. 이 나라에서는 좋은 학벌을 자랑하는 인재를 우위로 보지만, 서구에서는 현실에서 다채로운 경험과 도전을 축적한 스트리트 스마트의 상식과 지혜를 가치 있게 쳐준다(고미석, 책상물림 관료가 졌다, 2018년). 이런 풍토가 정책의 오류를 줄여준다. 물론 어떤 정책도 완벽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부작용이 뻔히 예상되는데도 “무조건 시행하고 보자”는 정책이 줄을 있고 있는 건 문제다.

최근 조삼모사(朝三暮四) 서민 경제 정책이 잇따라 서민들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만들고 있다. 전세대출 규제 정책이 그런 케이스다. 금융당국은 가계대출이 급증하자 일률적으로 대출을 규제하는 총량 관리 정책을 추진했다. 이에 은행들은 전세대출을 포함한 대출 상품들을 축소해 나갔다. 그러자 곧바로 전세 계약을 앞둔 실수요자들이 잔금을 치르지 못해 계약금을 떼이거나 반전세로 매물을 변경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서민 실수요자에 대한 전세대출 등에 차질이 없도록 관리하라고 지시하자 당국은 뒤늦게 올 연말까지 전세대출 규제를 적용하지 않기로 정책을 바꿨다.

현장은 혼란만 가중됐고 애꿎은 서민들만 골탕 먹었다. 현장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보면서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작은 목소리라도 크게 들어야 정책 집행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 귀 밝은 걸 ‘총(聰)’이라 하고 눈 밝은 걸 ‘명(明)’이라 한다. 귀 닫고 눈 감고서 총명한 정책이 나올 리 없다. 정책을 입안하는 관료들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구중궁궐에 있으면 위험이 턱밑에 닥칠 때까지 실감하지 못한다. 물은 생물을 키우고, 부드러워 다투지 않으며, 낮은 곳으로 묵묵히 흐른다. 그래서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고 한다. 이른바 상선약수(上善若水)다. 이런 물도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된다. 같은 물을 마시고도 소는 우유와 고기를 준다. 정책결정자가 어떤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지는 말할 필요가 없다. 


원문보기 http://www.kwnews.co.kr/nview.asp?aid=22110260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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