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금감사 칼럼- 김창균 조선일보 논설주간] '외계인 침공'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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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9회 작성일 2025-06-26 09:44본문
이란 핵 위협 미래형인데
美 협박과 완력, 굴복시켜
러, 우크라 침략과 맞물려
국제사회는 정글로 퇴행 중
中은 대만 놔두란 법 있나
약육강식 생존 전략 세워야


“너희 두목 은신처를 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해치울 수 있어. 지금은 일단 봐줄게. 다만 내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다는 걸 잊지 마.”
조폭 영화에서나 듣게 되는 대사다. 어둑한 조명, 칙칙한 목소리, 섬뜩한 미소가 연상된다. 실제는 트럼프 미 대통령이 국제사회가 다 보라고 소셜미디어에 올린 내용이다. 이란이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으면 ‘알라의 대리인’ 최고 지도자를 죽일 수 있다는 엄포다. 죽인다는 단어에 느낌표(kill!)까지 달았다. 유엔 헌장 2조 4항은 ‘회원국은 무력 위협 및 무력 사용을 삼가야 한다’고 정했다. 그 조직을 창설하고 이끌어온 미국의 대통령이 주권국가의 실질적 수반을 살해하겠다고 협박했다.
트럼프는 ‘최고 지도자’ 대신 이란 핵 시설 세 곳을 제거했다. “2주일 내 결정한다”더니 이틀 만에 실행했다. 태평양 쪽으로 위장 비행을 띄우고 대서양 쪽에서 본대가 공습했다. 작전명대로 이란을 한밤 중에 망치(midnight hammer)로 두들겨 팼다. 과거 미국이 중동 전쟁에 뛰어들 땐 국제사회 공감대를 구하는 척 다국적군 모양새라도 갖췄다. 이번엔 그런 성가신 절차는 생략했다.
앞서 이스라엘은 ‘일어나는 사자(Rising Lion)’ 작전으로 이란의 목표물 100여 곳을 기습 타격했다. “이스라엘을 향한 이란 정부의 고조되는 적개심에 대응하는 차원”이라고 했다. “당신들이 우리에게 화를 내기 때문에 공격했다”는 논리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는 존재할 수 없다. 이번 작전은 이란의 위협을 제거할 때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했다.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개전 사유(casus belli)는 자위권, 동맹 보호, 유엔 안보리 승인 등 세 가지를 꼽는다. 상대 공격이 임박했다는 징후가 뚜렷할 때 선제공격(preemptive strike)까지는 자위권 확대 개념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 위협을 제거하는 예방 전쟁(preventive war)은 인정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적개심 내지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핑계 삼은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은 ‘예방 전쟁’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단계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대선 기간 타임지 인터뷰에서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경우 대만을 돕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답하기 껄끄러웠던 모양이다.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려 하면 그때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중국의 대만 공격은 ‘외계인의 지구 침공’만큼이나 현실성이 없는데 왜 그런 걸 묻느냐는 거다.
1·2차 세계 대전은 인류의 ‘정신적 미개 상태’가 빚은 비극인 줄 알았다. 100년 전 사람들은 전쟁이 얼마나 끔찍하고 부질없는 일인지 깨닫지 못했던 모양이라고 지레짐작했다. 1910년 출간한 노먼 에인절의 ‘거대한 환상(the great illusion)’은 “전쟁은 너무나 자기 파멸적이어서 산업국가 간 전쟁은 비현실적”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 이 책은 25가지 언어로 번역돼 200만부가 팔린 국제적 베스트 셀러였다. 그 무렵 미 스탠퍼드대 초대 총장은 “문명화된 국가들은 이미 전쟁을 졸업했다”고 했고, 독일 엘리트 계층도 “자본주의 국가 사이에서 전쟁은 벌어질 수 없다”는 낙관론을 공유했다. 그런데도 인류는 1914년 1차 세계대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100년 후 사정은 달라졌을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고, 그러면서 유태인 출신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나치 잔당이라는 핑계를 댔을 때, ‘쇠락한 수퍼 파워의 시대 착오’라고 읽었다. “러시아가 많이 망가졌구나”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미국이 이란에 겁주고 완력을 휘둘러 항복 선언을 받아낸 후 승리감에 도취된 모습엔 당혹감을 느낀다. 스스로 만들고 지켜 온 전후 질서를 깔아뭉개다니 초현실적이다. 국제사회는 먹이사슬에 따라 먹고 먹히는 정글로 퇴행하고 있다. 힘센 자들끼리 서로의 제물 사냥을 눈감아 주기도 한다. 미국은 침략당한 우크라이나를 조롱하고 면박하고, 러시아는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조약을 맺은 이란의 수모를 못 본 척했다.
이런 마당에 중국이 오랜 세월 자기 땅이라고 주장해 온 대만을 공격하는 일이 그렇게 비현실적일까. 다른 나라 국경을 거침없이 넘나드는 러시아와 미국이 ‘외계인’처럼 낯설다. 이 야만의 정글 속에서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면” 우리에게 제3자처럼 평화 타령 할 여유가 허락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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