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칼럼-백기철 한겨레 편집인] “좌우로만 보지 말고 위아래로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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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40회 작성일 2020-11-25 09:54본문
“한겨레가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이쪽저쪽 눈치 보며 시늉만 하는 것 같다”는 지적을 받았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자 한 참석자가 무심코 말했다. “좌우로만 보려 하지 말고 위아래로 보세요.” 그 말은 여야의 정쟁 와중에 어디가 옳은지, 어느 편을 들어야 할지 고민할 게 아니라 그 아래에서, 국민의 입장에서, 약자의 처지에서 위를 꿰뚫어보라는 것이었다.
백기철 | 편집인
얼마 전 <한겨레> 독자 모니터 모임인 열린편집위원회 뒤풀이 자리에서 최근 논조와 관련한 얘기들이 나왔다. 한 위원은 “요즘 한겨레를 보면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이쪽저쪽 눈치 보며 시늉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뚜렷한 방향 없이 욕 안 먹을 정도로 정부나 야당 비판을 적당히 하고 있다는 취지였다.
그런 게 아니고 최대한 균형을 잡으면서 시시비비를 가리려 노력하고 있다고 답할까도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 자신부터 때때로 헷갈리는 경우가 있고, 기자들 사이에선 시국을 보는 인식의 편차도 제법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옆에서 가만히 있던 한 위원이 툭 던지듯 말했다. “좌우로만 보려 하지 마세요. 위아래로 보세요.” 둘 중 어디가 옳은지, 둘 중 어디를 택해야 할지 양자택일에 매달리지 말고 다른 각도, 다른 시선으로 보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여야의 정쟁 와중에 어디가 옳은지, 어느 편을 들어야 할지 고민할 게 아니라 그 아래에서, 국민의 입장에서, 약자의 처지에서 위를 꿰뚫어보라는 말이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윤석열 검찰총장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공동취재사진, 연합뉴스
화두 비슷한 게 나오자 좌중은 활기를 띠었다. 이 정부가 노동문제에서 제대로 한 게 없다, 지방대학이 죽어가는데 대책 없이 고사하기만 기다리는 형국이다, 한국판 뉴딜이 상당 부분 부풀려져 있다는 등 날카로운 지적이 이어졌다.
진보-보수가 사사건건 대립하고 진보 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요즘엔 도무지 방향 잡기가 쉽지 않다. 이날 모임을 통해 이런 때일수록 진보의 기본 가치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그간 양쪽을 저울질하며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거나, 기계적 균형을 맞추려 한 것 아닌가 되돌아봤다.
현 시국의 최대 이슈처럼 돼 있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충돌 역시 마찬가지다. 둘 중 누구 편을 들어야 하는지가 아니라, 이 문제를 관통하는 기본 가치가 무엇인지 따져봐야 한다. 윤석열과 두 전·현직 장관의 1년 넘는 지루한 대결의 이면은 결국 검찰개혁을 둘러싼 건곤일척의 승부다. 또 검찰개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길고 고통스러운 깨달음의 과정이기도 하다.
조국과 추미애를 상대로 ‘걸면 걸린다’는 식으로 압박해온 윤석열의 행태는 애초부터 검찰개혁에 반하는 것이었다. ‘산 권력’에 대한 수사가 검찰개혁이라는 그의 말은 한번 찍은 타깃은 어떻게든 거꾸러뜨리고 만다는 검찰 지상주의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조국이나 추미애의 신변 문제를 놓고 인디언 기우제 하듯 칼춤을 추는 게 검찰개혁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검찰개혁의 주 걸림돌은 현 국면에선 윤석열이다. 그가 아무리 유능한 칼잡이라고 해도 너무 멀리 와버렸다. ‘국민의 검찰’이라는 미사여구 뒤에 숨은 윤석열의 검찰 지상주의는 적폐청산 수사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봐야 한다. 지금 국면에서 중요한 건 윤석열의 ‘반개혁’ 행보를 멈추게 하는 것이다. 추미애 장관의 진퇴는 그다음 문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역시 마찬가지다. 검찰권을 견제하고 권력자들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를 위한 공수처는 검찰개혁의 오랜 숙원이다. 공수처가 완벽한 제도라고 할 순 없지만 지금 시점에선 검찰개혁을 위해 건너야 할 강이다. 포퓰리즘 독재라는 비판이 거세지겠지만 더는 미룰 수 없는 일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공정경제 3법 등 개혁 입법도 마찬가지다. 부작용을 꼼꼼히 따져가면서 약자를 위한 ‘공정 입법’을 흔들림 없이 밀고 가야 한다.
‘좌우가 아니라 위아래’의 관점에서 지난 3년 반 국정을 돌아본다면 집권세력은 국민 앞에 회초리를 맞는 심정으로 서야 마땅하다. 세 번의 선거에서 줄기차게 밀어줬지만 그에 걸맞은 가시적 성과를 냈다고 보기 어렵다. 부동산, 최저임금 등 정책적 오류, 성추문과 내로남불 등 도덕성 실추는 뼈아프다. 초심을 되찾아 분골쇄신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보수 언론의 도를 넘은 비판은 노무현 정부 임기 말을 닮아가고 있다. 악담과 저주에 가까운 천편일률적인 공세는 정부의 손발을 꽁꽁 묶으려는 것으로 비친다. 애초부터 조용한 개혁이란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렇다.
정기국회가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정치는 더 시끄러워질 것이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나쁜지를 두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소모적인 논쟁이 이어질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뚜벅뚜벅 앞으로 가야 한다. 정쟁 중심의 틀에서 벗어나 국민의 편으로, 개혁의 편으로, 촛불의 편으로 한걸음씩 다가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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