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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황상진 한국일보 논설실장] 도 넘은 팬덤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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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831회 작성일 2020-11-16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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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분노 조장해 美 분열시킨 트럼프
기형적 '팬덤 정치'로 민주적 규범 파괴
與, 골수 지지층만 볼 때 폐해 직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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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인근 BLM(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광장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반대 집회 참가자가 트럼프 지지자와 설전을 벌이며 충돌하고 있다. 워싱턴= 로이터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불복 사태는 그가 미국에 끼친 폐해들의 응축이자 정점이다. 미국 사회에서 소외돼 온 저학력ᆞ저소득 백인들을 부추겨 미국 민주주의의 정신을 뒤흔듦으로써 미국 사회를 갈등과 분열로 몰아갔다. 관용과 배려, 포용과 화합 대신 혐오와 분노를 조장하고, 이성과 지성이 아닌 감성을 자극해 기존 정치ᆞ사회 질서와 규범을 깨뜨리면서 미국과 미국민에 대한 국제사회의 존중과 신뢰를 무너뜨렸다. 그 중심에 보수도 진보도 아닌 기형적 ‘팬덤 정치’가 있다.


배경과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한국 사회도 유사 증세를 보이고 있다. 여당은 ‘문빠’로 통칭되는 골수 지지층의 영향권에 갇혔고, 야당은 ‘태극기 부대’와의 결별을 주저하고 있다. 하지만 여야와 팬덤 사이의 유대는 강도 차이가 크다. 야당은 개과천선도 못한 채 지리멸렬한 행보로 팬덤의 구심력조차 되지 못하고 있지만 여당은 다르다. 4월 총선에서 176석을 얻자 골수 지지세력 눈치보기가 더 심해졌다. ‘양념’이 ‘에너지원’이 되면서 팬덤의 정치 영향력 강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트럼프 4년의 미국에 대입하는 것은 무리지만 여당의 팬덤 정치가 초래한 대립과 갈등에서 권력을 쥔 세력의 오만과 독선이 느껴지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어제와 오늘이 다른 모순적 태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만 끌어와 쓰는 견강부회식 행보를 초지일관 ‘내로남불’ 태도로 방어한다. 선의로 꽉 찬 도덕적 정권이라는 자부가 그 원동력으로 보이지만, 과유불급의 이치를 간과한 탓에 제 눈의 들보는 보지 않거나 보고도 못본 척하는 일이 잦다. 나아가 ‘개혁’만 내세우면 수단이나 방법, 심지어 불법 논란을 부를 행위도 상관없다는 식의 태도마저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트럼프가 미국 민주주의의 심각한 위협이 된 것은 토론과 설득, 타협과 승복의 정신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그는 대통령 권한인 행정명령을 남발해 의회 기능을 무력화시키고, 말 안 듣는 고위 관료들을 몇 줄 트윗으로 해임하는 방법으로 정부를 맹목적 추종과 복종만 허용된 사조직처럼 만들었다. 하원 다수당인 민주당과 협치는커녕 충돌만 거듭했고, 정부 내에선 다른 목소리와 토론이 사라지게 했다. 대선 불복으로 드러난 미국 정관계의 쪼개진 현실이 이를 웅변한다.

우리는 다른가. ‘꿈의 의석’을 갖게 된 뒤 여당과 청와대는 자신들의 실책, 상대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 토론과 협상은 없고 우격다짐만 한다. 야당의 저항은 옹색한 외침도 용납 않는다. 건강한 비판조차 견디지 못하고 매번 언론으로 화살을 돌린다. 비판 수용력이 떨어지니 늘 화가 난 듯 경직돼 있다. 목청 높이는 공격지향적 인물은 많으나 화합ᆞ포용의 가치를 말하는 이는 드물다. 내부 쓴소리에는 무차별 공격을 퍼부어 입을 닫게 한다. 대국민 약속도 골수 당원 뜻을 무기로 뒤엎는다. 권력을 겨냥한 검찰총장이 문제라면 해임이 책임있는 조치일 텐데, 인디언 기우제처럼 자진사퇴 유도를 위해 온갖 비난과 압박을 가한다. 이것이 민주화를 이룬 세력의 모습일까.

트럼프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적이 없다. ‘잘못 인정과 사과는 나약한 짓’이라는 그의 학습된 인식이 초래한 결과가 대선 불복이다. 거대 여당이라면 팬덤 정치의 단맛과 작별하고 선의와 무오류의 착각에서 벗어나 실책과 잘못은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당당한 모습이다. 눈앞의 서울ᆞ부산시장 보궐선거를 겨냥한 교언영색이 아니라 너와 내가 아닌 우리를 위해 화합과 통합의 통 큰 정치를 하는 게 집권 세력이 가야 할 길이다.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많은 ‘보통사람들’이 팬덤 정치에 혀를 차고 있다.

원문보기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111515030002624?di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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