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칼럼-중앙일보 이하경 중앙일보 주필] 윤석열 떠난 문재인 ‘LH 폭탄’ 피할 출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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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910회 작성일 2021-03-08 10:10본문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의혹’은 부동산과 불공정을 동시에 때린 폭탄이다. 조국 사태, 울산 선거 개입,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옵티머스·라임 의혹은 충격이 제한적이었다. 이번에는 세대·이념을 불문하고 온 국민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이 정권은 24번의 오작동 대책으로 집값 폭등, 전세 대란을 불러 경제적 약자를 사지(死地)로 몰아넣었다. 뒤늦게 공급 확대로 전환했는데 악재가 터졌다. 제대로 수습하지 않으면 민란(民亂)을 각오해야 한다.
부동산·불공정 동시 강타한 악재
노태우·노무현은 검찰에 조사 맡겨
‘피의자’인 변창흠이 ‘검사’라니
직권남용은 대통령 위기의 시작
문제의 LH 토지보상 담당 직원들은 프로페셔널한 투기꾼이었다. 비공개·내부 정보를 손에 쥐고 3기 신도시 예정지 땅을 쇼핑하듯 사서 쪼개고, 희귀종 나무를 심어 보상가를 극대화시켰다. 경매 ‘1타강사’로 돈을 벌었다. 추악한 기교(技巧)는 엄정해야 할 법과 제도를 악취를 풍기는 축재(蓄財)의 도구로 만들었다. 자본주의의 하수구가 이런 것인가.
“집값을 취임 전 수준으로 돌려놓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을 믿었던 국민들은 사기당한 심정이다. 이 지경인데도 LH 직원들은 “우리는 투기하지 말란 법 있느냐”며 항변한다. 도덕적 해이가 선을 넘었다. 3기 신도시는 물론 주택 83만 호를 공급할 2·4 대책도 출발선에서 길을 잃었다. 이제 미친 집값을 무슨 재주로 막을 것인가.
문 대통령이 전수조사를 지시했지만 검찰은 정부합동조사단에서 제외됐다. 형식적으로는 총리실이 주관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부동산거래관리시스템을 운용하는 국토부가 주도한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은 LH가 사고칠 때 관리책임이 있는 사장이었다. 결과적으로 피고인이 검사석에 앉은 초현실적인 장면이다. 법치주의의 몰락이다.
더구나 변 장관은 “개발 정보를 알고 땅을 미리 산 건 아닌 것 같다”고 직원들을 감쌌다. 컨트롤 타워가 “무죄”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으니 조사 결과는 볼 것도 없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길 수 없다”고 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조직을 두둔하는 듯한 언동은 절대로 해선 안 된다”고 질책했다. 부동산 대책을 감당할 자격을 잃은 국토부 장관은 자진해서 물러나야 한다.
노태우·노무현 전 대통령은 달랐다. 노태우 정부는 1989년 분당·일산·중동·평촌·산본 등 5개 지역의 1기 신도시 건설계획을 발표한 뒤 땅값 폭등을 겪었다. 대통령은 검찰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하고 1년2개월 동안 투기 사범 1만3000명을 적발해 987명을 구속했다. 구속된 공무원만 131명이었다. 노무현 정부도 2005년 2기 신도시 조성 후 검찰 중심의 조사단을 만들었고, 공무원 27명을 적발해 처벌했다.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참모였던 문 대통령이 검찰이 부동산 투기 단속의 주체가 됐던 전례를 몰랐을 리 없다. ‘셀프조사’라는 반칙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잘 알 것이다.
인간 문재인은 청렴한 삶을 살았다.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까지 서울 홍은동 ‘금송힐스빌’에서 전세로 지냈다. 투기꾼을 봐줘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더구나 ‘공정’과 ‘정의’의 수호자가 아닌가.
그런 문 대통령이 ‘투기꾼의 저승사자’인 검찰을 빼고 합동조사단을 만든 데는 필시 말 못할 곡절이 있었을 것이다. 자신에게는 엄격하지만 뜻을 같이하는 사람의 허물에는 한없이 관대한 성품이 이런 부조리한 상황을 초래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썩은 살을 도려내야 새 살이 돋아나는 법이다. 공사(公私)를 혼동한 부적절한 관용은 대통령 권한의 남용이다.
이제 야인(野人)이 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조국 사태 당시 이렇게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의 싹을 초기에 자르지 못해 몰락했다. 검찰이 대통령 주변의 비리를 선제적으로 쳐내는 것은 대통령을 보호하는 길이다. 그런데 이 정권은 검찰이 남을 상대로 칼질할 때는 환호하다가 정작 자기 환부에는 칼을 갖다 대기만 해도 난리를 친다.” 그는 스스로를 ‘충신’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윤석열의 진심은 싸늘하게 거부당했다. 황운하·김남국·김용민·진성준·최강욱 등 피의자·피고인 신분의 여당 의원들이 뭉쳐서 “중대범죄수사청을 만들어 검찰 문을 닫겠다”며 그를 압박했다.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며 ‘검찰 개혁 속도조절’ 신호를 보냈던 대통령은 무도한 행위에 제동을 걸지 않았다. 윤석열이 “헌법정신과 법치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며 사의를 표시하자 즉시 수리했다. 대통령의 진심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공정과 정의를 열망했던 대통령이 힘센 참모들에게 둘러싸여 결단하지 못할 때 민심을 읽고 행동으로 실천했던 ‘충신’은 떠났다. 윤석열은 "(국토부) 자체 조사로 시간을 끌고 증거 인멸하게 할 것이 아니라 즉각적이고 대대적인 수사를 해야 한다”며 안타까워한다. 권력형 비리의 주역과 신도시 예정지에서 크게 한탕해 서민들을 괴롭힌 거악(巨惡)들은 “윤석열 없는 세상에서 발 뻗고 마음 편하게 자게 됐다”고 환호할 것이다. 하산(下山)하는 대통령에게는 출구 없는 위기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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