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칼럼-임성원 부산일보 논설실장] 동학개미와 '부산학개미', 증시 아직 갈 길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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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850회 작성일 2021-01-22 10:12본문
코스피 3000 시대, 낙관·비관 교차
‘누구의 말도 믿지 말라’ 시중에 퍼져
한국 증시, 여러 겹 ‘기울어진 운동장’
외국인 공세에다 재벌 대형주 편중
지방기업은 ‘강 건너 불장’ 보는 신세
부산 사랑하는 부산학개미 나서야
한국 증시가 새해 ‘코스피 3000’ 시대를 열었다. 2007년 7월 25일 ‘코스피 2000’을 돌파한 지 13년 5개월, 1956년 3월 3일 한국 증시가 개장한 지 65년 만인 1월 6일 ‘꿈의 지수’ 3000을 터치했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지라 증시 과열에 관한 각종 경고음이 쏟아지는 가운데 주가는 3100선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불안한 투자자들 사이에는 증시의 앞날을 두고 ‘누구의 말도 믿지 말라’는 잠언이 퍼져 나가고 있다.
눌리우스 인 베르바(Nullius in Verba, 누구의 말도 믿지 말라). 1660년 설립된 영국 국립과학협회인 왕립협회(Royal Society)의 모토다. 이 말은 근대 자연과학의 초석을 닦은 협회의 과학과 진보를 향한 믿음을 상징한다. 그런데 왕립협회 회장을 지낸 아이작 뉴턴(1642~1727)이 주식 투자 실패자라는 사실은 흥미롭다. 남해회사(South Sea Company)에 투자해 처음에는 재미를 보다가 ‘상투를 잡는’(가장 높은 시세에 주식 매입) 바람에 재산의 90%를 날렸다.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는 게 그의 변이다.
수학과 물리학의 천재인 뉴턴도 어찌할 수 없었던 주식. 누구의 말도 믿지 않는 신중함과 조심성에다 자신과 타인의 욕망마저 다스리는 도(道)의 경지를 요구한다. 일본 에도시대 오사카의 전설적인 투자자 우시다 겐자부로는 〈삼원금천비록(三猿金泉秘錄)〉에서 “눈과 귀와 입은 원숭이와 같아서 다루기 어려우나 이를 잘 다룬다면 금이 샘물처럼 솟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버전으로 ‘귀머거리 삼 년 벙어리 삼 년’의 독한 시집살이 같은 게 투자의 세계다.
여기에다 한국 증시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점에서 투자자들이 접근하기가 간단하지 않다. 대표적인 게 글로벌 주식 시장에서의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다. 분단상황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 재벌 중심의 불투명한 지배구조, 높은 외국인 투자자 비율에 따른 변동성 등으로 한국 기업 주가는 외국 기업보다 저평가되기 일쑤였다. ‘버블’이라는 지적까지 받는 코스피 3000 시대에도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수치인 주가수익비율(PER)이 한국은 15.4배로 미국(23.7배), 일본(23.6배)보다 크게 낮다.
최근 공매도 논쟁에서 보듯 한국 증시가 외국인 투자자의 약탈 시장이었다는 점에서 또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떠올리게 한다. 투자 금액에서 차이가 클 뿐 아니라 공매도에서도 외국인이 절대 유리하다.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을 마구 내던질 때 이를 대거 사들여 코스피 3000 시대를 활짝 열어젖힌 주역이 동학개미다. 반외세 동학농민운동에서 따온 말이지만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그리고 외국인 투자자들의 영향력이 막대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반도체·화학·IT·자동차·바이오 등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10개 종목의 비중이 전체의 48%를 차지하는 것도 한국 증시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웅변한다. 특히 올해 코스피 시장에 투입된 개인 자금 11조 5000억 원 중 절반이 넘는 5조 9000억 원이 삼성전자를 사는 데 대거 쏠렸다. 대형주는 물론이고 중·소형주, 코스피와 코스닥이 동반 성장해야 한국 증시에 미래가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지방기업 주식에서 절정으로 치닫는다. 부울경 상장사들은 코스피 3000 시대를 ‘강 건너 불장’ 보듯 했다. 지난해 부울경 코스피 상장사들의 시가총액은 37조 7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3.48% 올랐지만 전체 코스피 상장사 증가율(34.19%)에는 크게 못 미쳤다. 되레 하락한 종목도 32.1%나 됐다. 전체 시장에서 부울경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9년 2.25%에서 1.90%로 떨어졌다.
이쯤 되면 ‘부산학개미’ 를 비롯하여 ‘지방학개미’ 혹은 ‘지역학개미’들이 국토 여기저기서 우후죽순으로 솟아나야 할 시점이다. 동학개미가 외국인 투자자에 맞선 국내 개인 투자자라면 부산학개미는 권력과 자본이 서울에 편중된 ‘서울공화국’을 떠받치는 재벌 중심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지역기업의 주가를 온전히 지켜 내려고 행동하는 부산의 개인 투자자라 이름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주가는 기업의 미래가치를 현재가치화한 것이라고 정의한다. 전국 1000대 기업 가운데 부산 기업은 고작 34곳에 그치고 있는 현실에서 지역 기업의 주가가 제값을 못 받고 있다면 지역의 장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갈수록 인구가 줄고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몰려가는 상황에서 부산을 사랑하고 잘 아는 부산학개미들이 구원투수로 증시에 등판해야 할 때다. 지역사회와 지역기업은 공동운명체이자 원팀이기 때문이다. 여러 겹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아야 하는 한국 증시는 코스피 3000 시대를 맞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원문보기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1012118473936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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