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칼럼-양상훈 조선일보 주필] ‘태극기’가 文 도우미 된 역설, 野 넘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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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930회 작성일 2021-01-21 10:11본문
이번 선거조차
야당이 패하면
‘野 없는 나라’ 된다
야 후보 10여명 중에
‘야당이 달라졌다’고
청년층이 느끼게 할
그런 후보 있는가
·15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한 직후 필자가 만나본 6명의 청년들은 모두가 사전 투표에서 민주당을 찍었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찍은 후보 이름도 몰랐다. 무조건 1번을 찍은 것이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공정(公正) 이슈에 민감한 젊은 층이 조국 사태를 보고서도 오히려 민주당 정권에 표를 준 까닭이었다. 그들은 야당이 ‘싫다’고 했다. ‘왜 싫으냐’고 물으니 ‘그냥’이라고 했다. 남녀 관계든, 정당이든 ‘그냥 싫다’는 것이 가장 심각하다. 싫어하는 본인 스스로도 설명하지 못하는 이 거부감은 웬만해선 사라지지 않는다.
제21대 총선 사전투표 마지막 날인 4월 11일 경기 하남 미사1동 행정복지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 앞에서 시민들이 줄을 서고 있다. 젊은 층이 많이 보인다. /연합뉴스선거는 집권 세력에 대한 평가다. 민주당 정권은 지난 지방선거, 총선에서 싹쓸이 압승할 만큼 국정 운영을 잘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드루킹 여론 조작, 탈원전, 청와대 울산 선거 공작, 소득 주도 성장 실패, 조국 파렴치 등이 이어지며 비판 여론도 상당히 높아지고 있었다. 필자가 만난 청년들도 문재인 정권의 국정에 전폭적으로 동의하는 것이 아니었다. 총선 한 달 전 여론조사에서도 정권 지지론과 정권 견제론이 팽팽했다. 그런데 민주당과 야당 양자택일의 상황이 되자 젊은 층은 ‘그냥 싫은’ 쪽을 철저히 외면해버렸다. 코로나와 재난지원금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몰표였다. 젊은 층의 이 거부감을 그대로 두면 한국 선거는 권력 평가의 본뜻을 잃게 된다. 선거가 두렵지 않게 된 권력은 못 하는 것, 안 하는 것이 없다. 선거 후 민주당의 폭주가 이를 보여주고 있다. 나라와 국민은 물론이고 권력 스스로에도 해롭다.
최근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보면서 젊은 층의 야당 혐오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면 반대론은 예상보다 컸다. 이 여론에 가장 놀란 사람 중 한 명이 문 대통령일 것 같다. 바로 물러서 버렸다. 박 전 대통령은 수감된 지 4년이 돼 가고 이 전 대통령은 80세 고령이다. 이런 경우 현직 대통령이 사면하겠다고 하면 대체로 긍정 평가가 우세할 것 같은데 실제는 반대였다. 무엇보다 젊은 층의 반대론이 워낙 컸다. 4·15 총선에서 야당을 찍은 20~40대가 20% 안팎(투표 사후 조사)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사면에 찬성한 20~40대가 바로 20%였다. 이 세대에서 70% 안팎의 강력한 야당 비토층이 변함없이 건재하다. 지금 야당에 대한 지지도가 올라가고 있지만 막상 선거에서 다시 여야 양자택일이 되면 20~40대의 야당 비토층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 민주당 시장 성추행으로 치르는 4월 보궐선거라고 다를 것이란 보장이 없다.
젊은 층은 야당이 ‘그냥 싫다’고 하지만 세상에 그냥 싫은 것은 없다. 교수 한 분이 학생들과 대화하며 이를 파고들었다고 한다. 결국 ‘태극기가 싫다’는 것이 가장 컸다고 한다. 등산복 입고 태극기 든 노령층이 지하철에서 큰 소리로 말하는 것, 길 막는 것, 젊은이들에게 뭐라고 하는 것 등에 혐오가 컸다고 한다. 4·15 총선 서울 지역구에서 비호감도가 높게 나온 야당 후보가 원인을 분석해보니 ‘태극기 부대가 떠오른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막말하는 야당 정치인’들도 젊은 층 혐오 대상이었다. 이들 중 2~3명에 대한 혐오는 심각했다고 한다. 이들의 이미지 역시 태극기와 겹치고 있었다.
필자도 재작년 10월 광화문 집회에 참석했다. 엄청난 인파에 놀랐고 그분들의 나라 걱정에 위안을 받기도 했다. 도를 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일반 시민으로서 충정이었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서는 그 이상 숫자의 젊은이들이 전혀 다른 시선으로 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필자가 만난 청년들은 4·15 총선 때 박 전 대통령이 ‘야당을 중심으로 뭉치라’고 했을 때 ‘이러다 나라가 큰일 나겠다고 생각해서 민주당을 찍었다’고 했다. 그들은 조용히 있다가 표로 그 뜻을 나타냈다. 결과적으로 문재인을 가장 도운 사람들이 ‘태극기’가 되고 말았다. 이 역설은 지금 달라졌을까.
야당에선 야권 후보가 누가 되든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길 것이라고 한다. 부산시장 선거는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야권이 분열돼 3자 구도가 돼도 이긴다는 사람도 있었다. 부동산 대란, 문 정권에 대한 민심 피로도 등을 볼 때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4·15 총선 때도 ‘조국 사태를 보고도 설마 청년들이 민주당을 찍겠느냐’던 얘기가 있었다. 결과는 어땠나.
야권 서울시장 후보가 10명이 넘는다. 이들 중 서울시와 나라를 위해 자기를 희생할 사람은 몇 명인가. 젊은이들이 ‘야당이 달라졌다’고 느끼게 할 사람은 있는가. 박원순 성추행으로 치러지는 이번 서울시장 선거조차 야당이 패하면 한국은 아예 ‘야당 없는 나라’로 간다. 서울시장 선거는 시작일 뿐이다. 바로 닥칠 대선은 또 다른 문제다. 야당이 젊은 층의 혐오에서 얼마나 벗어나느냐를 보면 답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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