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칼럼-이하경 중앙일보 주필] 이재용 부회장에게 나라 위해 기여할 기회를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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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670회 작성일 2021-04-19 09:39본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천금 같은 기회를 놓쳤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주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대책 화상회의를 열었다.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과 브라이언 디스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주재하고 알파벳·삼성전자·대만 TSMC 등 19개 글로벌 기업 CEO를 초청했다. 바이든은 “우리는 다시 세계를 주도할 것”이라며 중국 견제 의지를 분명히 했다. 수감 중인 이재용 부회장이 참석하지 못한 것은 국가적 손실이다.
바이든·트럼프 회의 불참은 손실
리더십 없는 경제전쟁 승산 없어
세계 반도체 강국 도약하려면
문 대통령, 사면·복권 결단 내려야
2016년 12월에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테크 서밋을 열고 이 부회장을 초청했지만 국정농단 수사로 출국금지돼 불참했다. 애플의 팀 쿡, 알파벳의 에릭 슈밋,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등 14명의 CEO가 참석했다.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던 피터 틸 페이팔 창업자가 참석자를 정했다고 한다. 그는 이 부회장 글로벌 인맥의 일원이다.
펜스 부통령 당선인, 프리버스 비서실장 내정자, 윌버 로스 상무장관 내정자, 트럼프의 세 자녀와 사위 쿠슈너 등 최측근들도 모두 참석했다. 트럼프는 “미국에 투자하고 일자리를 늘려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도울 일이 있으면 어떤 것이든 하겠다”며 “언제든 내게 바로 전화하라”고도 했다. 유일한 외국 기업인인 이 부회장이 참석했다면 한국 정부와 트럼프 행정부의 메신저 역할도 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에는 전면전 대신 총성 없는 경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의 경쟁국은 기업과 정부가 합심해 싸우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주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반도체 수퍼사이클을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삼아 종합 반도체 강국 도약을 강력히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바이든의 화상회의를 의식했을 것이다.
한국은 ‘반도체 전쟁’의 한복판에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분야 세계 1, 2위다. 파운드리(위탁생산) 분야의 압도적 1위(점유율 56%)인 대만의 TSMC를 상대로 삼성전자(18%)가 도전장을 던졌다. 질주하는 중국에 맞선 한국이 마지막 기술 우위를 지키고 있는 분야가 반도체다. 미국이 중국을 아프게 때리는 지금이 한국 기업에는 한숨 돌릴 기회다. 여기서마저 밀리면 한국 경제는 끝장이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이 부회장의 부재(不在)는 뼈아프다.
한국식 재벌제도에는 정경유착과 황제경영이라는 부끄러운 흔적이 남아 있다. 비판받아 마땅하고 언젠가는 지워질 것이다. 하지만 책임과 권한을 갖고 신속하게 결정을 내리고 과감하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존재하는 장점을 굳이 사장(死藏)시킬 필요는 없다. 한국 경제가 생사의 기로에 선 지금,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에는 통 큰 결정을 내릴 리더십이 절실하다.
이 부회장은 복역기간을 다 채우고 5년간 취업이 제한되는 2027년까지는 경영 복귀가 불가능하다.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누구도 모른다. 미국의 반도체 개발과 설계 능력은 세계 최고지만 생산 규모는 세계 생산량의 12%에 불과하다. 그런 미국이 15%를 점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1위인 대만(22%)과 한 배를 탔다. 대만은 최대 고객인 중국 화웨이와 거래를 끊었다. 반도체는 산업과 군사 전 분야에서 핵심이기 때문에 미·중 격돌은 피할 수 없다.
이런데도 삼성전자(21%)는 20조원 규모의 미국 파운드리 공장 증설 계획도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리더십 부재로 자칫하면 시장과 기술을 모두 잃을 수 있다. 그때는 중국이 우리를 속국으로 취급할 것이다. 그래도 좋은가.
한국 경제에 불이 났다면 비상구가 필요하다. 이 부회장이 사면·복권돼 경영 일선에 복귀하는 게 최선의 해법이다. 그래야 ‘총성 없는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 손경식 경총 회장 등 경제5단체장도 “한국이 반도체 강국인데 그 위치를 빼앗기고 있다”며 사면을 요청했다.
‘재벌 3세 이재용’에게 특혜를 주자는 것이 아니다. 허물을 없었던 것으로 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가 국가를 위해 글로벌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그러면 겉돌기만 했던 미국과의 관계도 회복되고 “한국이 중국에 기울었다”는 불만도 잠재울 수 있다. 정부는 중국의 압력에 당당하게 버텨주면 된다. 그러면 비로소 중국이 우리를 제대로 대접하게 된다. 미·중 대결 속에서 경제와 안보를 확고하게 지키는 길이다.
이 부회장은 승계 과정에서의 허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제 아이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말 그대로 준법경영을 실천하는 중이다. 어떤 뜨거운 맹세와 가혹한 징벌이 더 필요할까. 문 대통령은 2년 전 삼성전자 공장에 가서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성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며 이 부회장의 등을 두드렸다. 약속을 지키려면 그를 사면·복권하면 된다.
문 대통령은 선악 이분법이 아닌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으로 판단해야 한다. 물색없는 원칙론자에게 휘둘린다면 시정(市井)의 범부(凡夫)와 무엇이 다른가. 모두를 위해 그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
원문보기 https://news.joins.com/article/24037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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